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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 되는 길로 오는 길
<파리 다카르 경주 도중 영영 돌아오지 못한 젊은 영령들에게 이 詩를 보낸다,> 사하라 일기 원작 최 종 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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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회에는 25개국이 참가했는데, 155대의 오토바이, 320대의 자동차, 70대의 트럭이 본 선수로 참가했고, 특히 일본은 5대의 경주차를 출전 시켜 27명의 TV팀 기자들이 몰려왔다. 한 대의 경주차에는 경주자와 보조 경주자, 둘이 타며 이 한대의 차를
보조하는 스피드 보조차(Speed Assistance Car) 1대와 사막, 산악용으로 개조된 트럭1대 이상이 정비사 3명과 부속 장비를 싣고 뒤를 따르게 된다. 별도로 경비행기에는 2명의 또 다른 정비사와 경주 임원들이 타게 된다. 그들은 비행기로
다음 도착지, 사막이나 평원에 내려 낮잠을 자며 휴식을 취하다가 선수차와 보조차가 도착하면 일단 요원에게
휴식과 잠자리를 제공하고 자신들은 밤새 차를 정비하면서 작전을 세운다. 이와 같이 자동차 경주에는 엄청난
인원과 장비, 조직이 필요하다. 이곳엔 세계 각지의 TV와 매스컴이 집중되고 각 나라는 자기 나라 차와 명예를 위해 선수의 생명을 걸고 경쟁적으로 참가하고 있다. 이 대회 참가는 현대 문명의 메커니즘의 총아인 자동차와 원시 속에서, 그래도 주인일 수 밖에 없는 인간이 가지는 필연적 불확실성에 대한 몸부림이고 도전이겠다. 마치 자신도 모르게 숨을 쉬고 있는 그것을 멈추게 할 수 없듯, 인간의 모험심과 창조성은 마치 그 숨결처럼 끊을 수 없이 원시와 미지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본성이 있는 것 같다. 그곳으로
달리는 이 긴 메커니즘 대열에 나 자신이 참가하는 것은, 에베레스트 등정의 역사처럼 한국 젊은이도 세계의
젊은이들의 창조적 모험과 도전에 동참하는 것이다. 더욱이 50억
인류의 대잔치인 88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스포츠 대국으로서 불모 상태이던 자동차 스포츠에 활력을
불어 넣고 이 1988년이 한국 자동차 스포츠의 원년으로 정해졌음을 기쁘게 생각하며 자동차 스포츠의
밝은 미래를 기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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未堂 徐廷柱 <시인> 詩人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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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기차게 내리는 비 속에서도 수백km의 연변에 엄청난 사람들이 줄을 서, 장도에 오른 우리의 행렬에 손을 흔들어 주었다. 마을들을 지날 때마다 태극기를 달고, 호돌이 마크를 온통 붙인 내 차에 수천 번의 플래시가 터졌고, 차에 적힌 내 혈액형 옆에 쓰인 이름을 보고 소리쳤다. 그간 고국에 알리지 않은 채, 많은 시간과 어려움을 참고 이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노력해 온 일이 가슴을 뿌듯하게 했다. 250km. 첫번째 통과 점검 지역, 샤또 루우즈(Chateau Rouge)에 도착하여 점심으로 뷔페를 먹었다. 이곳은 운전자인 나와 생사를 같이 할 파트너 파일럿인 시모나(Simonia)의 고향이기도 하다. 시모나의 부모 형제들이 우리를 에워싸 많은 인파로부터 접근을 막아 주었다. 이곳 사람들 풍습은 험한 길을 떠나는 사람에게는 ‘좋은 여행을…’이라든가 ‘행운을…’하고 말하면 안 된다. 떠나는 이에게 포옹을 하며 “Merde(프랑스 욕; 똥, 빌어먹을)’를 , 그것도 13번이나 외쳐댔다. 오후 4시 리모즈(Limoge)를 거쳐 브리브(Brive) 2번째 통과 점검, 3번째 뚤루즈(Toulouse)를 통과하여 밤 10시에 4번째 통과 점검 지역인 뻬르삐냥에 도착했다. 우리가 통과하는 곳마다 특유한 환영 행사를 받았고 풍성한 뷔페로 대접을 받았다. 자정 무렵 스페인
국경을 넘었다. 자정이 지난 후에도 마을 연변에는 아직 사람들이 모여 우리를 보고 환호하고 있었다. 이곳 유럽은 순수 스포츠 인구도 많지만 특히, 생활 스포츠 (생활 속에서 똑같이 행위되는 스포츠) 즉, 경보, 달리기, 자전거, 수영, 항해 경기, 오토바이, 자동차 경주는 국민적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또한 그것들은 관중들이
복잡한 경기 규칙을 알지 못해도 즐길 수 있는, 빨리 가면 이기는 일명 스피드 경주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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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서 왔소?” 하고 물었다. 내가 남쪽이라고 했더니 나의 비자 신청 서류조차 보기를 꺼려했다. 이 대회를 주관하는 막강한 대회 조직 본부 측이, 프랑스가 자랑스럽게 개최하는 세계 최고의 자동차 경주에 참가하는 각국 선수와 팀을 당사국과의 외교 관계로 거부한다 함은, 알제리 정부의 비자 시비에 좌지우지되는 감이 있고, 또 국제 스포츠 교류 정신에 엄연히 위배된다 하여 세계 자동차 스포츠 연맹과 프랑스 측 내무, 외무부에 진정을 하고 알제리 쪽으로도 전문을 보냈다. 물론 파리의 우리 대사관에서도 나를 많이 도와 주었다. 대회 본부 측은 이 대회에 작은 한국인이 참석함을 감탄해 마지 않는 터였고 특히 동양에서는 일본 일색으로 판을 치는 상황이어서 내게 많은 호감을 갖고 있었다. 대회 회장인 질베르 사빈느 씨와 재정 담당 책임자 쟈크 씨가 알제리 세관 책임자에게 서약서를 적고 난 후에야 나의 입국이 허락되었다. 5년 전에 만들어진 내 여권에는 알제리를 뺀 모든 나라를 여행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하여 나는 이 배짱과 억지스러운 알제리 입국이 우리 나라 법을 어기는 것이 아닌가 망설여지기도 했다. 나는 파리 제 4 대학(소르본느 대학)을 유학하며 태권도 사범으로 아르바이트를 해온 터였고, 70년대 당시 우리 나라와 외교 관계가 전혀 없었던 중동과 남미, 그리고 동구 공산권까지 내 선배들이 작은 한국인의 매서운 주먹을 시범으로 보여 주고, 그나라 정부 수뇌의 총해를 받아 왔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더러는 이미 뿌리 박힌 일본의 가라데의 현지 패거리에 장살 당하기도 하고 총에 맞아 죽어 가며 그 나라에 한국을 심구, 그 다음 통상 대표가 태권도 사범에 의해 그 나라에 소개 받아 들어갔고, 그 다음 영사관이 들어간 경우도 있다. 외람된 말이지만 한국 외교사에 한국 태권도의 활동 사항이 완전히 빠져 있는 것을 나는 아직도 의아해 하고 있으며, 그 엄청난 어려움과 희생을 당한 생생한 선배 제위들을 위해서는 한국 태권도 외교사를 책으로 만들어 외교사 어디에든 비집어 넣어지길 바란다. 나는 그런 마음으로 또 앞으로 13,000km의 죽음을 각오한 사하라 종단과 횡단의 길목 앞에서 용기를 잃지 않으려고 쓸쓸해지는 마음을 추슬렀다. 오후 2시, 우리를 태운 3대의
거대한 페리호 선박은 알제리를 향해 바르셀로나 항을 떠났다. “주여, 당신의 땅을 놈들이 네 땅, 내 땅 하는 어리석음을 용서해 주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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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히 남한과는 양국 외교 관계가 없어 비자를 내주지 않는 것을 관례로 하고 있고, 더욱이 알제리 현지에서 비자는 절대 어려운데 특별히 비자를 내 주니 한국에 돌아가면 알제리를 잘 소개해 주시오.” 라고 했다. 나는 머쓱해지는 기분을 억제하며 감사를 표시하고 ‘Your Excellency’라고 존칭을 써 주었다. ‘남한은 국력이나 교역량이 북한보다 몇 배나 많은 나라이며 우리와도 외교가 트이길 바라고, 그러면 알제리 국익에도 도움이 될 줄 안다’라고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그는 옆 수행원에게 눈짓을 하더니 따끈한 아랍 커피를 권했다. 나는 따뜻한 커피에 몸을 녹이며, “정치가나 외교관은 아니지만 한국의 유일무이한 자동차 경주 레이서로서 부탁 하나 할 수 있다면……, 88올림픽이 서울에서 있다는 것 아시죠? 이런 현시점에서 알제리와 한국이 양국의 스포츠 외교로부터 정부 차원의 외교가 시작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라고 말했더니, 덩치 크고 노인인 그 관리는, “그런 의미 비자를 주니 돌아가거든 알제리를 잘 이야기해 주고 우리 정부의 호의도 전하여 주시오” 라고 말하며 나의 가슴에 달린 올림픽 호돌이를 보고 ‘브라보 코리아 올림픽’이라며 다시 악수를 청했다. 나는 서울 올림픽 배지를 그들 모두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오전 9시, 알제리 수도 알제 외곽 스타디움에서 우리는 623km 떨어진 자르다이아(Gardhaia)로 향해 출발했다. 비가 오고 있어 흙탕물이 차를 덮쳤다. 50km 지점, 브리다(Blida)를 지나 높은 산간 지대로 들어섰다. 알제리 해안에서 계속되는 기름진 당은 이 산줄기를 넘으면서 끝나고 광대한 북 사하라가 시작된다. 산간
코스는 우리 나라 강원도 산골짜기처럼 높은 절벽과 계곡, 커브가 많은 길로 내가 평소 좋아했던 자신감
있는 코스였다. 비옥한 산간에 많은 종려수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1시간 후 나무가 점점 드물어지는 고원 지대를 지나 광막한 황야의 지평선 쪽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내가 튼 우리 가곡은 이 막막한 사막 황야에는 어울리지 않는 음악이었다. 살구꽃 피는 아기자기한 내 고향, 섬세한 땅거미가 동네 골목으로 스며드는 내 나라의 정다운 노래는 황폐한 광야 천지에서는 의미 없이 들렸다. 그래도 노면 상태가 좋아 나는 지휘자, 시모나는 목을 빼고 ‘떠나가는 배’를 오페라 가수 흉내로 불러 재꼈다. 황량한 석양 속에 묻힌 군데군데의 기적 같은 오아시스를 지날 때는 황야 빛을 닮은 양 떼들과 목동, 그리고 젤라바(Djellabah)를 입고 터번을 얼굴 깊숙이 감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손을 흔들었다. 알제(Alger)로부터 500km지난 곳에서 볼일을 보고 비스켓과 오렌지로 요기를 하고 또 달렸다. 저녁 6시 55분, 자르다이다(Gardahaia)에 도착했다. 사막 끝으로 갑자기 언덕이 나타나며 그 아래 분지에 큰 오아시스 마을이 나타났다. “아, 저기에도 삶의 불이 켜져 있구나.” 비박
장소에 오니 이 코스에서 5대의 차와 2대의 오토바이가 사고로
우리들로부터 낙오되어 병원으로 날아갔단다. 죽음의 대질주가 시작됐음을 실감했다. 우리가 온 코스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수십 배 험한 코스가 내일부터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오늘 밤 침낭에서 사막 별을 보며 기도하리라.
배가 고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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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간은 자르다이아-엘 골리아 455km. 파리로부터 2338km 주행. 알제 남쪽 1,048km 지점. 아침 7시에 기상. 커피와 치즈 한 쪽으로 아침을 대신했다. 그간의 접선 구간(Liaison)은 한정 시간 내에 도착 장소에 들어오면 페날티(Penalty; 한정 시간보다 늦게 도착한 만큼 늦게 출발시키는 벌점제)만 받으면 되는 가벼운 것이었으나 오늘부터는 스페셜 구간(Special; 주행 시간 채점)이다. 1초라도 더 빨리 달려야 하는 본 경주 구간이다. 1초라도 더 빨리 달려야 하는 본 경주 구간이다. 8시 5분 출발. 연료 240L, 일반
점검 및 각종 계기 점검 오케이. 전진 방향 235°. 주행로는 피스트(Piste: 차가 지가가면서 저절로 생긴 길)로
자갈과 굴곡이 심했다. 안전 벨트를 단단히 죄었으나 차가 튈 때마다 몸과 의자에 사이가 충격이 오고
눈알이 몹시 흔들려 고통을 느꼈다. 시속 90km에서 110km 속도로 달리면 수많은 구덩이 끝 부분만 타이어에 닿아 공중에 떠 있는 시간과 땅에 닿는 시간이 반반씩
되게 되어 있다. 만화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차가 붕붕
뛰면서 달리는 장면이 계속되었다. 앞으로 갈수록 피스트의 흔적은 엷어지고 막 우리들 앞을 지난 몇 줄의 차 바퀴 흔적만 남아 있었다. 보조 경주자는 조수석에 앉아서 시계로 구별되는 노면 상황과 상태를 충고하는 것을 비롯하여 노선책을 정확히 읽고 목표물 거리 계산, 나침반 방향 제시를 순간마다 경주자에게 지시해 주어야 한다. 경주자는 보조 경주자의 거리 계산과 시간바다의 나침반 방향 수정에 조금의 오차라도 생기면 차는 꺼낼 수 없는 모래 늪으로 들어가거나, 멀리 지평선 너머 엉뚱한 곳으로 가다 조난 당하게 된다. 그 때는 차를 움직이지 말고, 구명 깔개를 펴놓고 구조될 때까지 예비 타이어부터 본 타이어까지 태우며 검은 연기를 올리고, 밤에는 불을 지피는 수단밖에 없다. 송수신 라디오는 대회 규정에 사용하지 못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의 수십 배가 넘는 이 넓은 사하라에서 구조 비행기가 우리를 못 찾으면 그로써 생을 사막에서 끝내야 한다. 그러한 일이 설혹 우리에게 발생하여도 나는 구차한 애착의 눈물을 흘리지 않기로 했다. 유서 한 장은 이미 내 품에 있었다. 세계 최고의 자동차 경주에 참가하고 싶었던 내 꿈이 이루어 지고 있는 이 순간, 온몸의 흔들리는 무게대로 마음이 전율하고 있다. 한 평생을 선하게 살아온 노인처럼 죽음을 담담하고 곱게 맞을 마음의 준비는 내가 여태 살아온 35년 만큼이나 귀중한 자세이리라 생각한다. 34.50km 지점. 나침반 230°로 수정. 자동차가 지나가며 가로로 일률적으로 만들어 놓은 딱딱한 모래톱(Tole) 시작. 피스트 외곽 주행 금지. 38.35km. 차는 시속 100km로 모래톱 위에 떠 있는 현상 계속. 피스트
외곽 주행 계속 금지. 차는 지그자그의 커브를 주행하는 데 거의
60~70°의 방향을 꺾어야 했으며, 그 때 마다
5~6m씩 미끄러졌다. TV 헬리콥터가 우리 위를 2바퀴
선회한 후 사라짐. 47.04km. 나침반 240° 수정. 흰 모래 계속. 하씨 엘 하자(Hassi E 1-hadjar)의 폐허 된 보루 왼쪽으로
선회. 64km. 수많은 모래 무덤 시작. 곳곳에서 차들이 모래 무덤에 얹힘. “최대한 모래 무덤을 돌아라, 방향 190으로 바꿔!” 나는 끝없이 전개되는 상황을 시모나에게 고함쳤다. 81km 지점. 전방 100m 앞 급경사 모래 언덕. 15m 언덕 아래로 미끄러진 후 골을 가로질렀다. 건너편 흙 모래산, 우측 편으로 공격했으나 골의 커브를 벗어나지 못했다. 나는 시모나로부터 핸들을 받았다. 후방 50m까지 넉넉하게 후진, 4륜 구동 저속 보조 기어로 갈고, 2단 기어로 최대 엑셀러레이터, 좌편 35° 경사의 자갈 모래산으로 공격. 중간에서 1단 기어로 바꾸었으나 정상 4m 정도를 남기고 오르기를 멈추었다. 우리 차 우편에 푸조와 닛산 등 5,6대의 차가 모래에 빠져 깔개와 삽으로 작업을 하며 허우적 거리고 있었다. 왼편 산을 향한 나의 세 차례 공격도 모두 무위로 돌아갔다. 화가 난 나는 차를 주먹으로 한 대 갈겼다. 손만 아팠다. 한참 공격 지형을 의논한 후 다시 시모나에게 핸들을 넘겨주었다. 내가
방금 공격한 전방 35°경사, 좌편 15°경사를 시모나는 두 번째 공격에서 아슬아슬하게 차를 기울이면서, 기울어지는 쪽으로 곡선 커브를
그리며 시도하여 성공했다. 그는 이 대회에 8회째 참가하는
직업 레이서답게 능숙했다. 소요 시간 1시간 10분, 언덕을 내려가며 둘이는 손바닥을 마주치면서 목을 빼고 늑대
울음 소리를 냈다. 해냈다는 성취감에 겨운 우리는 음악을 틀었다. 모짜르트
교향곡 40번 중간 부분이 나왔다. 10년 버릇대로 나는 멋진 지휘자가 됐다. 92km. 시속 20~60km로 달릴 때가 가장 몸이 많이 상하게 되어 있고 심리적으로도 가장 불안한 상태가
된다. 자동차 경주에서 이 속도로 달려야 하는 것이 답답하지만 지표가 굴곡이 심해 그 이상의 속도를
낼 수 없었다. 이 속도를 낼 쯤의 모든 경황이 차를 가장 잘 넘어뜨린다. 우리는 2시간 이상 이런 상태로 달리다 갑자기 절벽 앞에서 아슬아슬하게
멈추었다. 발끝을 가시로 간지는 전율이 쫙 퍼졌다. 차를 뒤로 빼 좌회전하여 절벽을 따라가다 모래가 모여 비스듬히 생긴 라디에(Radier; 자동차가
지나가기 어려운 상태의 여러 가지 지표 상태)를 타고 코끼리처럼 밀려 내려가는 데 성공했다. 150km부터 구간 끝. 지루한 터덜거림에 머리가 멍청해지고 엉덩이와 허리에는 감각이 없어졌다. 해가 지고 있었다. 뿔뿔이 흩어져 오다 황야에서 같은 목표 지점으로
방향을 정한 우리의 대열이 내는 수십km의 먼지가 지평선으로 구름처럼 피어 오르고 있었다. 큰 고장으로 뒤에 따라오고 있을 보조차를 기다리는 차량, 그리고
차가 부서져 아예 경기를 포기하고 구조 신호(X표 사인을 다른 경기 주자가 받으면 대회 본부에 도착하여
알림)를 하고 있는 주자들이 측은하게 먼지를 덮어 쓰고 있었다. “아직은 금물이다. 조금만 더 달리자.” 졸음을 쫓으며 지도 읽기를 잠시 멈춘 나를, 시모나는
그냥 놔두고 어두운 계곡 아래 종착지의 피스트가 확인된 곳으로 내달렸다. 황무지 계곡을 몇 개 돌고
나니, 이미 포기하고 두고 간 오토바이와 빈 차 주위에 드문드문 모여 있는 터번을 두른 사람들이 보였다. 마을이 가까워져 오고 있는 것이리라. 아프리카, 아랍의 하느님…! 인 샬라. 가면 되는 길로 오는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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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5일. 바람 없음. 엘 골리아- 인 샬라(El Golea-In Salah) 679km. 파리로부터 총주파
3.017km. 아침 5시 기상. 들판 야영은
추웠다. 커피와 보리 비스켓, 비타민 농축 젤리로 아침. 오전 6시
7분 출발. 엘 골리아 마을을 관통하여 셰바라(Chebara)방향. 나침반 110°. 비교적
고른 피스트. 시속 180km로 달려 미리벨(Miribel)의 페허된 보루 스페셜 구간 진입. 잠시 종려수 아래
마른 샘 앞에서 긴 호흡으로 마음을 가다듬었다. 오전 9시
5분. 가끔 와디(마른 냇가)가 나타나는 것 외에는 53.50km 지점까지 시속 200kim로 직선 거리를 질주할 수 있었다. 가끔 와디 크레파스가
나타나 차를 10m 이상 미끄러지며 급정거하게 했다. 그러나
오후부터 맞게 되는 200~400km까지의 코스에 비하면 이건 양반 가마길이었다. 68.70km. 나침반 120°. 절대 피스트 탈 것. 큰 모래톱과 심한 웅덩이로 차가 튀어 오를
때마다 안전 벨트로 묶지 않은 머리만 헬멧 무게를 더하여 흔들렸다. 수백개의 와디를 계속 가로질렀다. 와디 속에는 앙상한 가시덤불이 모래빛으로 말라 군데군데 모여, 언젠가
올 빗물을 기다리며 끈기 있게 몸체를 말려 생을 속으로 연명하고 있었다. 생을 걸고 생을 위해 물을
기다리는 덤불……. 나같이 장사군처럼 이익을 남기는 경영을 위해 사는 것이 옳다면 저 가시덤불의 생은 손해 투성이의 빵점 인생처럼 보인다. 107.32km. 피스트 벗어나도 좋음. 2km가 넘는 넓이로
차가 지나간 자국이 펼쳐 지더니 갑자기 피스트가 급격히 좁아지며 경사 45°의 와디로 내려가는 비탈길, 군데군데의 돌더미를 피하여 여러 대의 차가 서로 지나가려고 법석이다. 167.45km. 줄곧 바위 언덕을 오르내린다. 차체가 30°~40°정도 기우는 비탈을 단숨에 기어 올랐다. 내린다. 온 몸은 흘러 내린 땀으로 온통 젖었다. 지금 우리가 흘리는 땀은 체력 소모로 인한 것이 아닌 긴장과 불안으로 흘리는 땀이었다. 184km. 볼일 보고 시모나와 운전석 바꿈. 운전복
안의 방화복 내의를 홀랑 벗어버렸다. 차에 오르기 전 둘은 손을 마주치며 짐승 같은 괴성으로 서로를 북돋웠다. 하늘이 파랗다는 것을 새삼 마음으로 느꼈다. 붉은 모래의 배경 때문에
그런가 보다. 나침반 방향 150°. 넓은 사막을 핏줄처럼 수천 갈래로 갈라진 와디를 가로지르는 코스가 나타났다.
모래 웅덩이와 커브가 함께 있을 때는 속도를 줄이자니 아깝고 미끌어 틀자니 웅덩이가 위험하고 난감했다. “전방 3km부터 피스트 벗어나면 안됨. 방향 180°; 전방 1.1km. 방향 110°로 수정. 800m, 600m, 200m 수정. 피스트 벗어남. 피스트 바깥 황야 상태 좋음. 바깥으로 나가라.” 시모나는 운전 방향과 상태를 열심히 내게 지시해 갔다. 241km 지점에서 그는, “위험! 크레파스다. 위험! 아니야, 절벽이다!” 라고 고함쳤다. 아뿔싸! 어찌 둘이 다 그 절벽을 못 보았을까? 속도 120km에 급격히
3-2-1단 기어로 줄여 가며 브레이크를 연속적으로 눌렸다. 최대한의 마찰을 위해 오른쪽, 왼쪽으로 차를 틀리게 하며 나는 속으로 하느님을 연신 외쳤다. 절벽 20m 앞에서 차의 감속 속도로는 절벽 앞에서 멈출 수 없음을 직감하고 직선으로 끌리게 하다, 오른쪽으로 핸들을 틀었다. 이러면 차는 엉덩이를 전면으로 180°뒤틀리는 현상이 생긴다. 나로서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차는 둥글게 오른쪽으로 차체가 밀리더니 200°가량 뒤틀리며 절벽 6m 정도 앞에서 멋지게 멈췄다. 이 때의 멋지다 함은 살았다는 말이다. 휩싸였던 먼지가 사라졌을 때 내 차는 분명히 절벽 위에 아직 남아 있었고 나는 운전대에
머리를 묻고 있었다. 온몸에 식은 땀이 나고 힘이 다 빠졌다. “에이, 병신아! 이 병신!” 나는 연거푸 시모나에게 욕을 했다. 욕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 멍청아, 60m 앞에 와서 절벽 위험 신호를 해 주다니…….” 물론 경주자도 전방 관찰을 하지만 바로 지척의 지표를 훑어가다 보면 순간 전방 관찰을
못 할 때가 있다. 작년에 일본 팀이 이런 곳에서 비행기처럼 절벽을 날아 내려 황천길로 떠난 사건이
생각나 온 몸으로 진저리를 쳤다. 우리도 그와 같은 꼴이 될 번 했다. 우린 평소 말을 놓는 사이지만 그가 나의 친구가 아니었다 해도 할 수 있는 욕은 다
해주었을 것이다. 계속 절벽으로 지면이 끊긴 와디의 연속이었다. 이런
날은 500km구간이라도 실제 주행 거리는 800~1000km 정도에
이른다. 595km 지점까지 왔을 때 완전히 밤을 맞고 말았다. 아직
황야와 돌밭 계곡이 84km나 남았다. 우리는 체력 소모를
다 하고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더 가야 하느냐, 아니면
야영을 하고 새벽에 떠나느냐를 망설이다 30분만 쉬고 가기로 했다. 커피를
끓이고 고단백 분말 음식을 물에 타 약처럼 마셨다. 절인 쇠고기와 뜨거운 커피는 조금의 여유를 생기게
했다. 별이 총총했다. 내가 아직 살아 있어 저 별을 볼
수 있음이, 내 모르는 이름 없는 이에게 보내는 감사로 그윽하다. 한
수 시가 절로 나왔다.
토막 난 논리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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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6일. 모래 바람. 총주파 거리 3,836km. 오늘 구간은
인 살라(In Salah)에서 타마라셋(Tamarasset)까지 819km. 아침 5시
기상. 어둡고 차가운 모래 바람. 아직 한 번도 양치질, 세수를 못 해봤다. 모두가 모래 먼지와 기름 때로 한 겹을 뒤집어
쓰고 입과 눈만 제 빛으로 살아, 추위에 젖어 있는 모습들은…. ‘인간
자존심’을 위해 적지 않으리라. 비박 장소에는 어제 아침 엘 골리아를 출발했던 차들이 지금까지 먼지를 일으키며 도착하고 있었다. “에미! 이 아침부터 먼지를 마시누나.” 우리도 자정 후 35분에 도착 신고를 했다. 이 대회에 참가한 모든 차는 의무적으로 도착 신고를 해야 했다. 도착 신고도 없이 차가 코스에
없는 것이 비행기로 확인되면 조난으로 간주한다. 수천수백 명이 참가하는 이 대회에는 각종 사고나 코스
겨계로 20여 대의 비행기가 동원되나, 조난된 파를 찾아
나서기보다는 사고 부상자를 시렁 나르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에 코스를 벗어난 조난차 수색 비행기는 절대 부족한 실정이다. 많은 스폰서들이 자기 팀을 보호하기 위해 자가용 비행기나 전세 경비행기를 이용한다. 어제의 비박 장소까지 34대의 차량이 각종 사고로 낙오되었고,
중상 9명은 S.O.S 항공편으로 유럽에 후송되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6시 현재,
50대의 차가 미 도착인 상태였다. 자정 넘어 도착한 차들 중 우리처럼 비행기 보조 팀이나
정비사가 없는 가난한 팀들은 그들 손수 정비를 하고, 노선 책을 보며 밤을 해고 다음 코스를 떠나야
한다. 더욱이 오늘 포스는 819km의 돌 계곡과 사막 언덕 공략의 험난한 코스였다. 나는 떨리는 아침 추위에 커피를 마시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본래 내 나라나, 나 자신 아무 것도 없지 않았는가. 사우디
중동으로 노동자들이 나가 달러 벌어 오기 전 국고가 3천만 달러밖에 없었지. 그리고 그 즈음 내 유학길은 국법으로 손에 백 달러를 들려 보내야 했지. 이제는
수백억 불 수출입에다 순이익만 수십억 달러가 넘고, 유학생은 월 천불을 국법으로 송금 받을 수 있는
형편이 되었지. 그렇듯 저 덩치 큰 부자들도 견디는데, 몸으로
버티는 신체의 한계를 아무 것도 없는 천한 몸이 못 버티랴. 그 중에 넌 수천만 원이나 들여 처음으로
선진국 부자 놀음에 끼어 들지 않았는가….’ 잡념도 가끔은 필요한가 보다. 나의 이 스치는 잡념이, 지친
심신에 활기를 주는 듯 했다. 허리춤을 덜썩 올리며 엇-싸하고
배에 힘을 주며 차에 올랐다. 나 보란 듯, 시모나도 늑대소리를
지르고 차 안으로 들어왔다. 오전 8시 43분 출발. 30초 간격을 두고 떠나는 차들의 먼지가 줄로줄로 하늘에 오르고 있다. ‘해내리라. 오늘 코스에서 가장 많은 차가 부서지고 해체되는 날이다. 웬만큼 죈 나사도 다 풀어지는 819km, 마의 코스이다.’ 시속 170km. 작은 구덩이와 흙무덤을
지날 때는 차가 1m나 높이 튀어 4~5m씩 공중으로 난다. 우리 시골의 잘 닦여진 비포장 도로 같았다. 49.70km 지점. 라디에에서 차가 거꾸로 넘어질 뻔했다. 방향 10°의 거의 북쪽에서 다시 방향 60°로 수정하고, 15분을 달리니 전방에 서서히 돌산 줄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두
개의 산을 낮은 등성이로 넘고, 산 사이의 와디를 건너려고 했으나 차가 오를 만한 곳이 없었다. 방향 130°쪽으로 향하여 출구를 찾아 계속
와디를 내려갔다. 제2속도계 가동. 와디의 가시나무 앞을 뜯고 있던 야생 낙타가 둔하게 도망을 한다. 102.68km. 또 하나의 산등성이를 올라탔다. 그러나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헤매도 내려갈 곳이 없었다. 오늘은 계속 지형 공격에서 적지를 못 만나고 있다. “야, 시몬. 이족 경사를 돌면서 차가 만약 넘어지려고
하면 왼쪽으로 틀어 원심력을 받으면 될 것 같은데….” 30분을 헤매고 난 후, 시모나는 나의 말에 따랐다. 나는
차의 뒷면에 되도록 많은 무게를 주기 위해 차 뒤에 매달렸다. 차가
48° 급경사에서 내리 꽂히는가 했더니, 좌회전하면서 원심력을 받아 왼쪽 언덕을 돌았다. 이 순간, 나는 타가 틀리는 쪽 언덕 받이로 날아가 버렸다. 다행히 언덕 경사에 떨어졌다. 몇 번 몸을 뒹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시모나는 차를 멈추지 않고 그냥 내려가고 있었다. “엇-에미…!” 뒷뒷 화가 절로 치밀었다. 주먹보다 큰 돌을 차 쪽으로 집어 던지며 나는 투정을 했다. “이건 자동차 경주가 아냐…굶은 산적들이 노루 잡으러 온 거지…에미!” 198km. 방향 180°지금까지 온 일이 모험 소설의
드라마 같다. 수면 부족에 체력은 진이 다 빠져 버렸다. 그
많은 산의 계곡과 등성이를 빠지고 또 타고 여기에 모자라 골에 몰려있는 모래 언덕을 20°~30° 기울어진 채 고계를 한 지 2시간. 이제 전방에 산이 없어지고, 검은 흙모래로
된 평원이다. 최대 속도. 지표는 점점 모래로 변하고 피해
갈 수 있는 노화된 검은 산들이 나타났다. 내가 오후 내내 지나친 그 산들 중엔 완전히 도태돼 버린
것도 있었다. 수억 년의 풍화 작용과 모래 바람에 깎여 조각조각 먼지로 날려 간 쉬, 나중에 남은 것은 생물이 살아갈 수 없는 벌거숭이로 가장 견고한 바위 성분만 남는다. 그 단단한 바위들도 풍상과 세월 속에 금이 가고 허물어 내려 먼지로 닳아가다,
기어이 동물이 죽고 뼈를 이 사막에 형체대로 남기듯, 수억 년 전의 거대한 산은 모래밭
위에 까만 바위 뼈를 한 무더기씩 남기고 있었다. ‘아! 산도 이 사하라에서는 죽어가고 있구나.’ 70년을 살다 갈 인간 앞에 장구한 세월의 흐름과 산의 주검을 보는 감회는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우리는 80분 동안이나 죽어 가는 산의 뼈
무덤을 큰S자 커브를 그리며 지나갔다. ‘오늘, 내가 지나간 얼마 뒤, 내가 죽고 난 한참
후, 너도 너의 검은 몸체 무게대로 사하라 밑으로 내려가 버리리라.’ 혹 이 장대한 시경 앞에 산이 죽어 가는 것으로 내다본 내 작은 시심(詩)이, 지질 학자의 과학적인
이론으로 말짱 거짓말이 될까 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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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6일. 밤. 별천지. 313.95km. 양대콩만한 검은 돌이 박힌 모래밭에 빠진 차를 건져 내 널빤지 위에 올려놓고, 우린 커피를 끓이고 말린 쇠고기를 먹었다. 멀리 10리쯤 밖에 물체가 보여 쌍안경으로 봤더니, 고장 난 경주차와 보조
트럭이 한창 작업을 하고 있었다. 경주 코스에서 경주차가 고장 나거나 사고나 나면 신속히 뒤 따라오던 스피드 보조차(Speed
Assistance Car)가 자기 차에서 모든 대치 부속을 살신적으로 빼내어 경주차를 고쳐 보낸다(경주차와
스피드 보조차의 차종과 성능은 동일함). 혹은, 더 큰 사고
고장으로 스피드 보조차로도 고칠 수 없을 때는, 몇 시간 뒤에 따라오는 보조 트럭이 엔진이 깨지지 않은
이외에는 모든 정비 수리를 신속히 하여 경주차를 코스에 보낸다. 이 트럭에는 충분한 예비 부속품과 심지어
소형 발전기와 산소 용접기, 소형 선반까지 준비되어 있다. 파리-다카르 자동차 경주는 유능한 파일럿과
자동차만으로 참가할 수 없다. 파일럿 팀과 정비 팀, 기획
관리 팀이 혼연 일체가 된 메커니즘이 원시의 사막 속에서 이루어 내는 피눈물 나는 예술품이다. 따라서
세계의 차종이 이 대회에 한번 참가하게 되면 순위에 관계 없이 그 차의 질을 인정 받게 된다. 400.40km. 대평원 시작됨. 방향 215° 고정. 지평선은 오늘도 주홍빛에서 파란색까지의 아름다운 색상
띠를 두르기 시작했다. 알제리 북부에서 시작된 이 평원의 크기는 감이 잡히지 않는다. ‘좁은 우리 땅, 분단까지 된 반쪽 땅을 쓸모 없이 많이 사두고 금고 속에 땅문서를 값이 오를
때까지 썩히고 있는 사람, 강남의 땅 장사들, 그리고 월급
모아 땅 사는 데 야망을 두고 있는 내 친구들은 이곳 북아프리카로 오라. 땅문서도 필요 없이 제주도만한
땅을 하나씩 가져라. 내 이력서와 내 교활함을 파리 전지 캠프에 맡겨 놓고 왔듯이, 당신들도 올 때는 땅문서를 의사 없는 효도 양로원과 데모하는 영등포 쪽 공단에 맡겨 두고 오길….’ 하늘과 땅은 창세기 때 하느님이 만들어 놓아 사람이 주인일 수 없다. 비누가 칫솔은 이익을 보고 팔아도 좋으나 땅을 샀다 팔았다 하여 이익을 남긴 불자나 교인들이 있다면 놀라운
일이다. 또 그런 헌금으로 하느님 땅을 인간에게 돈 주고 사두고, 종교
사업 계획 부지 팻말을 박아 둔 교회나 절이 우리 나라에는 없기를 하느님께 빌어 본다. 그리고 맑은 물, 신선한 공기 사시사철 꽃과
나무가 성한 우리 좋은 땅에서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사는 데 불만이 많은 자와, 국산은 쓸 만한 것이
없어 외제만 사용해야 하는 부자들은 샘 하나와 나무 그늘 몇 그루만 있어도 사막 한가운데서 삶을 차리는 먼지 자욱한 오아시스로 오라. 또, 골재를 채취하여 살아가는 내 형님께도 저 모래산 두어 개쯤
주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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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7일. 맑고 모래 바람. 총 주파 거리 4,541km. 오늘 구간 타마라셋(Tamarasset)에서
알리트(Arlit) 705km. 2시간 수면. 코펠에 담아 서서 마시고 있는 내게 카메라를 들이대며 화란 TV 팀이 가로막았다. 사람 꼴이 아닌 내 모양이 부끄러워 얼굴을
가리며 소리쳤다. “이봐! 원숭이들한테 보여 주는 TV 프로그램 만드는
거요? 내가 세수한 날, 인터뷰 약속 하겠소.” 도망하는 나를 쫓아오며 기어이 그들은 인터뷰를 해갔다.
미치광이한테 뺨 맞은 기분이었다. 8시 5분, 와디의 홍수로 사태가 난 2개의 끊긴 피스트 앞에서 하마터면 쉽게 경주를 끝낼 뻔했다. 많은
선수들이 접선 구간에서 아깝게 탈락하곤 하는데, 마음의 긴장이 풀려있는 탓이리라. 오늘 접선 구간 57km 중, 두 번째 크레파스 속에 입방아를 찧어 20분이나 허비하여 남은 8분 동안 스페셜 구간처럼 미끄러지고 튀며 달려야 했다. 67km. 오래된 보루 옆 싸리나무로 둘러쳐진 집 3채
있는 마을 이름이 타가우오란다. 앞으로 90km 더 가면
알제리 국경을 넘어 니제르로 들어가게 된다. 69.40km. 와디 몇 개를 건너 340˚방향으로 우회전한
후, 다시 나침반 방향 248˚로 좌회전. 80km 이상을 와디의 마른 바닥을 따라 내려갔다. 마른 강바닥은
부드러운 흙모래였다. 먼저 출발한 차들이 내는 먼지는 장관이었다. 이
먼지 속 시계 15m도 안 되는 데서 앞차를 추월해 내려면 고도의 운전 기술보다는 죽음의 용기가 필요하다. 가끔 우리 차를 멋지게 따돌리는 차의 경주자들의 용기도 용기거니와 뒤로 처지게 되는 우리 파는 순간 먼지에 휩싸여 시계 제로 상태가 되어
버린다. 물론 급정거해야 하고 시계가 트이는 만큼씩 다시 속도를 내야 한다. 그러는 사이, 가속이 붙은 또 다른 뒷 차가 추월해 가면 또 장님이
되는 억울함을 겪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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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지 않게 앞지르는 방법이 있긴 있다. 넓은
와디 속에 또 작은 와디가 있는데. 가장 최근에 소량의 빗물이 흘러내린 곳은 지면이 비교적 단단하고
먼지가 일지 않는다. 바로 이곳에서 앞지르는 대전쟁이 벌어진다. 그러나
그곳도 사활의 위험이 걸리는 곳이다. 다른 작은 줄기의 와디와 합류한 흔적에는 반드시 50cm~1 m의 층계(Marche)가 생겨 차가 공중을 날다 꽂혀
버리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와디의 긴 바닥을 이제 막 출발한 우리 차들이 내는 먼지는 최대 시계 30m밖에 되지 않았다. 터번으로 사막 안경만 내놓고 얼굴과 머리를
휘감았으나 먼지를 마시지 않는 방법은 없다. 그 동안 먼지를 열 숟가락은 더 마셨다. 유럽
파일럿들은 속으로 들어간 모래 먼지를 씻기 위해 주로 우유를 많이 마신다. 그러나 우리 나라 탄광촌
아주머니들이 잘 만드는 돼지 삼겹살 볶음보다 나을까? 거기다, 소주
한잔까지 곁들이면……아-, 먼지 그득한 입 안에 침이 나와
절로 넘어간다. 144.58km. 로드 북에 있는 지형이 실제로 나타나지 않아 길을 잃어 버렸다. 10km이상의 넓은 와디 골짜기에 속절 없이 갇힌 꼴이 되었다. 골짜기를
더듬다 넓은 공지로 나올 때면 여러 대의 차가 제멋대로 이리저리 쏘다니고 있었다. 144.85km지점
부근 와디 구렁에는 방향 감각을 잃은 땅개미 떼들의 일대 혼란이 일어났다. 우리가 가는 방향과 거꾸로
지나쳐 가고 있는 차가 있는가 하면, 한 대의 차가 방향을 잡아 자신 있는 속력으로 달아나면 여러 대의
차가 급히 그 차를 뒤쫓고, 한참 후 몰려 갔던 골짜기를 되돌아 나온다.
모두들 혼자 방향을 찾아 달아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건만 혼자 조난 당하는 게 싫어 몰려다니는 수밖에 없다. 그럴수록 방향감과 거리감이 없어진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차 한
대가 리비아 국경까지 넘어가 버린 불운한 일이 생겼고, 이날 37대의
차가 만 24시간 동안 돌아오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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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깝지만 나는 시모나에게 20km 이상을
되돌아 거슬러 올라가게 했다. 폭이 수km나 되는 와디에서
방향을 잡아 거슬러 오르는 것도 문제였다. 나는 멀리 있는 지형 지물에 기준을 잡아, 제2거리 계기로 거리 추산과 감산을 작동시키고 주 나침반 방향을
고정시킨 다음. 비상 나침반으로 임시 방향과 거리 계산을 했다. 시간
손해를 많이 보더라도 확실한 지형 지물까지 되돌아가는 데는 과감해야 한다. “이 엉터리…. 저 멍청이들과 쏘다니는 기차놀이를 언제까지 하려고 해. 기름도 180L밖에 없어!” 나는 헤매고 있는 차들과 같이 돌아다니려던 시모나를 질책했다. 그는 작년 모리타니아 코스에서 4일 밤 4일 낮을 조난 당해 벤츠 4륜 구동차의 본 타이어까지 태우고 차를
그곳에 사장시킨 쓴 경험이 있다. 물론 파리의 모든 가족들은 그가 죽은 걸로 단정하고 유족들(?)이 TV화면에서 연일 울고 불고 한 희비극이 있었다. 그런 일을 당하고 보니 그는 조난이라는 데 과잉 반응을 자주 보였다. 2시간 15분 만에 로드 북 피스트 진입에 성공했다. 162km. 반쯤 모래로 덮인 산과 산 사이를 몇 개나 비집고 나오니 죽은 산의 돌무덤이 시작되고
그 너머 사막이 도도히 펼쳐졌다. 시계는 트였지만 부드러운 모래가 깊어 달리지 못하니 마음만 지평선
끝으로 달아났다. 지형 지물이 있는 부근의 사막 표면 상태는 짓궂게 불규칙했다. 250.40km. 오후 4시
33분. 시계는 사막 또 사막. 다시 방향을
잃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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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처음으로 눈 앞의 사막이 바다로 변해 버리는 아지랑이 현상을 봤다. 전방 수km 너머는 푸른 색이 도는 은빛 천지다. 불안 속에 계속 방향 130˚로 주행. 그러나 길을 잃었을 때는 지표가 아무리 좋아도 달릴 수 없었다. 391.30km. 방향이 맞았다. 고장나 수리하고 있는 팀을
만났다. 프랑스가 자랑하는 202번 주자, 페스카롤로의 차로 자동 장치의 치명적 고장이란다. 틀림 없이 그는
경기를 포기하지 않으면 5시간 이상 페널티를 받을 것이다. 아깝다. 오늘 오후까지 우리에게 낙오 신호(X자 사인)를 해달라는 2대의 차를 보았고 2대의
오토바이 중 1대는 불타 버렸다. 우리는 몇 쪽밖에 안 먹는
레이션과 비상 식품을 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구조가 늦어질 때를 대비해 음식과 물만은 넉넉해야 한다. 467.50km. 막막한 사막 계속. 오후 8시 42분. 아직 240km나 남아 있었다. 2번이나 길을 잃어 버리는 바람에 4시간이나 허비했기 때문이다. 밤에는 절벽이 겁나 훨씬 속력이 떨어진다. 오늘 밤에 잠자기는 그렀다. 내일 아침 다음 구간 출발 시간 전까지만
도착했으면 좋겠다. 엊그제부터 내일까지 내내 운전을 하면 80시간
동안 2시간 밖에 못 잔 것이 된다. 혹시 내일도 잘못하여
자정 전까지 도착 못하면 또 잠을 못 자게 되고, 그 때는 이 귀중한 여행을 포기해야 한다. 더 이상 눈 떠 버틸 힘이 없었다. 마음이 초조해지고 온 몸에 땀이
솟았다. 내일에 달려 있다. 험한 노정이 문제가 아니라 잠이
문제였다. 만약 여기서 포기한다면, 88년 1월 1일 고국의 올림픽 아침에 내 나라 차와 팀으로 참가하려 한 포부는
허사가 되고 나를 도운 국내외의 멋진 선배 친지들에게 면목이 없게 된다. 497km, 우리는 체력이 쇠진해지고 무서운 졸음에 시달릴수록 운전석을 거의 40분마다 바꾸었다. 바람막이 모래산 옆에서 저녁 준비를 했다. 별들이 하늘에 가득했다. 그 무리들은 갖가지 모양과 힘으로 내가
모르고 있는 어떤 힘으로 태초부터 나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얘기하는 것 같았다. 알퐁스 도데의 별 이야기가 기억났다. 스테파니네
집 목동과, 이렇게 메커니즘 놀음에 젖어 있는 나는, 마을이
그립고 별을 신비하게 생각하는 마음은 똑같으리라. 사하라 사막에서 보는 별은 신비롭고 아름답다. 낮은
인간을 성하게 하는 대지가 넓어 넓어 가다 바람이 불어 가는 날 빛 끝으로 막아 버리는 하늘이 지평선에서 담을 쌓고, 밤에는 별을 거느리고 오는 하늘을 심술궂은 땅이 반이나 가려 버리누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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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반짝이는 소리만 나고 천지는 태고적 나를 보고 있다. 가스 버너에 커피 물을 올려 놓고, 우린 그 자리에서 잠들어 버렸나
보다. 3시간은 넘게 잤다. 개운한 몸은 놀란 토끼 모양이다. 560.30km. 400m 앞까지 대낮처럼 비추는 헤드라이트 하이빔 불빛 앞에
241번 주자 차가 비참한 형태로 전복되어 있었다. 단단한 모래땅 구덩이를 튀어 오르다
지표 접착에 실패, 그곳으로부터 150m 정도 전후 좌우로
수십 바퀴 긁은 자국이 나 있고, 차의 모양은 형체가 없었다. 부디
경주자들이 살았길 바란다. 새벽 별이 하늘 위에서 보인다. 아프리카의
하느님…! 605.62km. 사막 중간중간에 가시나무가 어둠을 휘감고 한 그루씩 서 있다. 물도 없는 곳에 신기하다. 우리 꼴이 어둠 속 도둑 고양이 같다. 그 도둑 고양이를 피해 어둠과 바람은 지평선 쪽으로 맹렬히 도망가고 있다. 680km. 방향 135˚. 무한 시계. 태양이
사막 위로 쏟아지고 있다. 피곤하게 굴러 가고 있는 차를. 눈부신
광채의 사막 위로 불끈 올려놓은 것 같다. 도착 지점이 멀지 않았음을 알리는 검은 타이어 표적물이 쌍안경에
들어왔다. 정확했다. 멋진 보물을 찾은 기분이었다. 우리는 차 안에서 둘러쳐진 구명 파이프를 두들기며 환호했다. 나침반
방향을 잘 잡고 있는 줄 알았으면서도 2시간 이상 지형 지물이 없는 사막을 달리다 보면 마음이 불안해진다. 엉뚱한 방향으로 달리는 기분이 자꾸 들기 때문이다. 하늘 아침 속 8시 14분. 알리트 도착. 급유와 레이션만 받고 바로 다음 구간으로 출발. 오늘 구간, 알리트-알브르 티에리 사빈.
692km; 스페셜. 차의 일반 점검은 못 하여 염려가 되었다. 53.85km. 2개의 돌산 사이에 나 있는 지그자그 코스로 만만찮은 지세였다. 우리는 얼른 차에서 내려 밑으로
기어 들어가 충격 제동 피스톤 4개를 급히 갈아 끼웠다. 도회제이선
몇 년을 타도 고장 나지 않는 완충 장치 피스톤을 거의 매일 갈아 끼워야 했다. 차가 얼마나 튀고, 날며 충격을 받는지 가히 짐작할 수 있다. 만약 이 피스톤이 말을
듣지 않으면 차 하부 전체가 충격으로 내려 앉을 수 있는 위험도 있지만,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미끄러져 커브 돌기’에서 정확한 감이 오지 않는다. 갈아 끼우는 시간 21분 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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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50km. 굴곡 심한 모래 표면을 만나 차는 기절할 듯이 소리를 내며 힘들어 했다. 293km. 모래에
빠짐. 324km. 모래에 빠짐. 372km. 모래에서는
완전 정지를 하면 안 된다. 정지한 차가 조금만 잘못 움직여도
80~90%는 빠지게 된다. 일단 빠지면, 두어
번 빠져 나오려 하다가 안 되면 더 깊이 빠지기 전에 삽으로 모래를 퍼 내고 깔개를 깔아야 한다. 또
깊은 모래길 공격 시, 일단 차가 조금이라도 전진하고 있으면 절대 기어 변속이나 엑셀러레이터의 눌림
강도를 줄이면 안 된다. 엔진이 깨지는 소리에 기죽지 말고 미미한 전진이 계속되는 한 끈기 있게 밀어
붙여야 한다. 483.20km. 마지막 체크 포인트에서 일본 경주차 미쯔비시의 차가 모래에 빠져 허우적 거리고 있었다. 태극기
달린 내 차가 도착하니, TV 카메라들이 집중적으로 몰렸다. 차에서
내려 볼일을 보고 있는 내 등 뒤까지 와서 촬영을 했다. “엇! 에미, 뭘 찍어!.” 나는 화가 치밀었다. “몽고족 오줌 누는 것 처음 봤소?” “ 처음 봤소.” 대답 한 번 고약하다. “사실은 그걸 찍은 게 아니고 당신 등에 쓰여진 ’88 TEAM KOREA’라는 걸 클로즈 업
했소.” 나는 이미 많은 나라 기자들과 인터뷰를 했는데, 대부분 유럽 기자와 일본 기자들이었다. 그들은 한국 팀의 참가에 예상 외의 호기심과 관심을 가졌다. 돈
많은 부자 나라들만 할 수 있는 경주라서 그럴 것이다. 나와 인터뷰한 기자의 반 정도는 우리가 아직도
미제 차나 수입 외국 차를 쓰는 걸로 생각하는 얼간이들이었다. “여보, 말 좀 조심할 일이요. 수박을 호박으로 봤소.” 그들의 그런 무지는 나에게, “한국이 오히려 구미 쪽으로 연간 수십만 대씩이나 수출을 하고 있는 실정이고, 그것도 동구권의
그런 싸구려 차가 아니라 순수 우리 기술로 최고급 승용차를 만들고 있소.” 하고 열변을 토하게 만든다. 그들 모두 놀란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이, “올해 무슨 차를 가지고 나왔소, 그리고 88년에는
한국 차를 가져 온다는 데 무슨 차종을 가지고 나올 거요?” 등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해 댄다. 나는 88년에 서울에서 올림픽을 한다 함이 자랑스럽고 본래 촌스러운 나이건만 각국의 매스컴들이
나의 태극기와 호돌이를 찍어 가는 데 이제 제법 근사한 포즈까지 취해 준다. 607.50km. 전진 방향 185˚. 평균 시속 160~180km. 하늘에는 흰 구름이 세시(여인들의
얼굴 가리개)처럼 걸려 휙휙 지나고 있었다. 사하라 하늘색은
고국의 하늘 보다 색이 훨씬 여리다. 지금 우리는 동남부 사하라의 마지막 종단 코스를 달리고 있다. 내일부터는 사하라 횡단 8,000km가 시작된다. 오전 6시 43분 도착. 수천 수백여 km 멀리에서 기름을 싣고 온 니제르 장사들이 모래밭에
드럼통을 눕혀 놓고 팔고 있었다. 기름 200L에 한화로 36만 원, 엄청난 값이었다. 선물을
주고 값을 깎은 것이 그렇다. 여기는 주위 오아시스로부터 수 백 km
떨어진 사막 한가운데이다. 작년 대회 때 이 대회 회장 티에리 사빈(Thierry Sabine) 씨가 대회를 관장하던 중, 헬리콥터 사고로
이 곳에서 죽었다. 이 외딴 사막에 한 그루의 신기한 고목 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를 사빈 씨 나무로
명명하고, 그의 뼈를 이 곳에 뿌렸다. 하여 그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이 곳을 8번쨰 코스 귀착점으로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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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주파 5,759km. 오늘 구간, 사빈나무- 다르쿠 526km. 아침 7시 기상. 충분한 수면을 취했다. 기분은 2~3일 자지 않고 먹지 않아도 견딜 정도로 체력이 회복된
것 같다. 어제 저녁이 고비였다. 만약 일찍 도착하지 못했다면
한계에 와 있는 체력과 차의 정비 문제로 오늘 대열에 들어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하루가 낙오되어
구간을 따라가기엔 차라리 경기 포기가 나은 것이 된다. 아침 10시 11분 출발. 천지는 하늘과 사막뿐이다. 방향
160˚. 거리 계기가 작동되지 않았다. 모래가 들어가지 않은 곳이 없어,
차의 모든 열쇠 구멍은 열쇠가 들어가지 않고 차 안은 10년 먼지가 쌓여 있는 듯했다. 엔진 쪽 기계도 모래로 많이 피곤해져 있다. 90km. 모래 상태가 깊어 계속 4륜 구동 1,2단 기어로
밀고 나갔다. 우리 차는 정상적인 길에서 1L로 3km까지 갈 수 있는데, 이 모래판에서는 50L로 100km밖에 가지 못했다.
엔진 진동수가 몇 시간 동안 계속 4,500회를 지속할 때도 있었다. 알제리 코스에서는 많은 차가 험난한 지표로 부서졌지만, 니제르 코스는
깊은 모래 지표로 많은 차들이 엔진 과열로 불이 나고 있다. 117.05km. NW-SE 방향으로 지나는 와디를 비껴 질러 달림. 모래 상태가 계속 안 좋았다. 끝없이 펼쳐지는 사막도 자세히 보면 가지각색이다. 모래톱의 촉과
방향이 다르고 , 표면이 단단하거나 무르고 부드러운 것에서부터 콩알만한 것까지, 어떤 것은 만든 것처럼 동그란 것도 있고, 빛깔도 여러 가지다. 하얀 빛에서부터 누런 것, 붉은 것, 분홍빛, 회색, 아주
새까만 것, 어떤 것은 광채가 나는 것도 있다. 그곳에서도
이따금 생명이 있는 데가 있다. 온통 뿌리 투성이로 뭉쳐진 요강만 한 머리풀은 돌멩이처럼 단단하여 달리기
불편하다. 그런가 하면 약 10cm 정도 자란 작은 갈대가
끝없이 펼쳐져 밟기 아까운 아름다운 곳도 있었다. 꿈속을 나는 것 같은 스피드감을 느끼게 했다. 170.20km. 모래 언덕을 타지 말라는 주의를 시모나에게 받고도 계속 가다 빠지고 말았다. 지표가 단단하게
보여 2단 기어로 시속 60km로 밀어 부쳤으나 기어이 언덕
쪽 두 바퀴가 묻혀 버렸다. “넌 그렇다니까…, 너의 속 내장은 거꾸로 만들어져 있는 것 같아….” 시모나는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빈정거렸다. 깔개를 깔기 위해 모래를 쓸어내도 언덕 쪽에서 밀려드는
모래로 환장할 노릇이었다. 소요 시간 17분. 189.45km. 방향 80˚로 좌회전. 시속 160km로 멋지게 미끄러지던 차가 순간 꽝 하는 소리를 내며 공중으로 솟았다,
땅으로 떨어지며 차는 몇 번이나 넘어지려고 기우뚱 거렸다. 휘청 중심을 잡고 또 달렸다. 시모나는 땀을 걷어 내는 흉내를 냈다. 사막의 지표보다 조금 올라와
있는 편편한 바위 위에 바람에 쓸린 모래가 엷게 덮여 부드러운 둔덕으로 보였던 것이다. 바람의 멋진
속임수이다. 214.44km. 로드 북에 나와 있는 나무 한 그루와 샘이 나타나지 않았다. 거리 계기에 330km나 나오도록 헤맸다. 영락없이 길을 또 잃었다. 아직 아직 예비 연료 탱크는 열지도 않았지만 120km나 쏘다니다
보니 염려가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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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이 올랐다. 엎친 데 덮친다던가, 여태 괜찮던 사막 표면이 갑자기 물러 내리며 차가 빠져 버렸다. 모래로
엷게 덮인 시멘트 빛깔의 부드러운 흙구덩이였다. 방향도 잃고 차도 빠졌다. 지옥이다. 차 하부까지 바닥에 닿고 바퀴는 밀가루 속을 헛돌 듯
했다. 100meh 넘는 그 곳을 파고 깔기를 계속, 우리의
비박 잠자리 도구까지 바닥에 깔아 가며 한 시간을 넘게 사투를 하고 나니 나는 이미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TV만화에 나오는 회색 인간과 똑같다. 서로의 모습을 봐도 우린 아무도 웃지 않았다. 33km. 로드 북 포기. 모래 위에 지도를 펴고 우리의 대강 위치 위에 나침반을 올렸다. 도착지 디르쿠까지 평균 직진하기로 했다. 가장 위험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사막에 남지 않기 위해서는 최선의 방법이다. 문제는 지도에
나타나 있지 않은 모래산 줄기와 절벽이었다 .넘을 수 없는 모래산은 산줄기가 끝날 때까지 수십 km, 더러는 100km도 넘게 따라가야 했다. 383km. 3개의 모래산 줄기를 넘었다. 모두 쇠못을 꽂아 당겨 올리고 깔고 밀었다. 보통 바람이 불어 올라가는 쪽 산 얼굴은 경사가 완만하고, 그 뒤통수는
대부분 가파른 절벽으로 경사 40˚~70˚까지 있다. 이
때는 차가 고개를 완전히 처박고 구르는 상태가 아니라, 차라리 떨어지고 있는 상태가 돼, 심장의 피가 머리 위로 다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이 때 차가 넘어지지
않는 묘법 또한 핸들에 달려 있다. 차 내부에 직경 6cm의
둘러쳐진 보호 파이프와 세 겹으로 묶어진 몸과 머리의 헬멧으로 비록 그곳에서 몇 바퀴쯤 굴러도 다칠 염려는 없었다. 물론 간이 죄지 않으면 심장을 다치게 되겠지만…. 425.20km. 긴 하루였다. 방향에 대한 불안감과 모래산 공격으로 완전히 지치고 서 있을 힘도 없었다. 이 모양새…. 인간 가치 0원이다. 이 지친 몰골을 서울과 파리의 친구들이 보면 웬만한 놈들은 의리까지 끊고 도망갈 테지…. 486km. 사막이 갑자기 꺼지고 그 아래 작은 오아시스가 나타났다. ‘ 아! 오아시스…!’ 저 곳은 길을 잃었거나 지친 나그네에게는 천국이다. 하지만 살에 거드름 밴 사람들이 올 곳은
못 된다. 눈과 코에 잔뜩 파리가 붙어 다니는 아이들이 동구 밖으로 나와 우리를 맞는다. 내 꼴이 그들에게 민망하여 샘으로 가 몇 두레박 통째로 덮어 썼다. 남은
레이션을 다 나누어 주어도 아이들 수에 모자란다. 노란 나를 신기한 듯 구경하고 있는, 여자들을, 나도 구경해 볼라치면 피부가 부드럽고 까만 그녀들이 밉상은
아니었다. ‘내 숨어 있는 비밀 속에도 아프리카의 연인은 없었지….’ 526km 도착 지점. 767km를 달렸다. 작은 오아시스에서
디르쿠로 가는 피스트를 타고 해 질 무렵 도착했다. 디르쿠 외곽 들판에는 낙타를 탄 사람들, 창을 들고 있는 아이, 어른들이 우리를 맞는다. 꼴이 아닌 우리 앞으로 와, “무슈, 카도.” 하고 외치며 손을 내밀었다. 선물 달라는 말이다. 어릴 때 코쟁이 생각이 난다. 마을에 새까만 사람들이 몰려와 기름 드럼을 서로 팔려고 악을 쓰고 있다. 토산품을 들고 와 흥정을
하는 아낙들 표정도 수줍다. 이 먼지 세상에서 몇 그루 나무와 샘만 믿고, 맨발로 사는 안타까운 인생을 본다. 우리가 이 곳에 오지 않았어야
했을 것이다. 몇 백년 전부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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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주파 6,614km. 오늘 구간 다르쿠- 아가데즈 855km. 아침 8시 17분.
양탄자 같은 모래가 끝없이 펼쳐졌다. 하늘에는 양떼구름이 남북으로 갈리어 있고 눈부신 햇빛. 어제의 지옥 같은 날에 비하면 고진감래 격이었다. 평균 방향 270˚~280˚. 사하라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간 많은 우리네
동료들이 사하라 종단 중, 사고와 조난으로 대열에서 떨어져 나갔다. 매일
비박 장소에 도착하면 세계적인 레이서들의 낙오 소식과 슬픈 이야기들이 들렸다. 이제부터는 스피드와 인내의
대질주다. 여기까지 버티어 온 우리 차와 우리들은 햇빛과 푸른 바람을 보고, 하느님께 감사한다. 아프리카 지역마다의 토속신들에게도…. 나는 유럽에서는 예수님을 믿고 아랍에서는 알라신을, 극동 우리나라에서는 부처님을 열심히 믿는다. 소외된 곳의 그들 토테미즘도 좋다. 서로를 이단시하는 극단론자들보다
마음이 편하고, 그들 모두가 다른 지역, 다른 이름으로 똑
같은 한 분 하느님을 나처럼 믿고 있으리라. 하느님을 명석한 머리로 찾아내는 것보다 믿는 것을 하느님은
좋아하시리라. 그래서 내 이름 이니셜 J.R대로 친구들은
내게 지랄이라 부르고 현대판 원시인이란다. 124.05km. 초막 한 채 옆에 샘이 나타났다. 샘은 바위 밑으로 깊고 넓었다. 시모나에게 한 두레박 주었더니, “빠르륵, 빡, 빡….” 하며 닭이 날개를 털고 도망하듯 샘 주위를 돌았다. 주위는 사막 뿐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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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km. 수백 개의 부드러운 모래 능선을 파도 타듯 넘고 있다. 멋지다.
카세트 속의 먼지를 털어 냈더니 삐걱거리며 로드리고 2악장이 나왔다. 시모나는 쌍안경으로 지형 관찰을 하고 있는 나에게 ‘롬멜’이라고 진작부터 부르고 있었다. “진정 내가 롬멜이라면, 넌 은근히 나보다 높은 히틀러가 되고 싶은 모양이구나. 네놈은 콧수염까지 길러 영락없이 히틀러야.” 이런 빈정거림으로 가끔 사막이 웃을 정도로 모래판에서 엎치락뒷치락 사자 놀음을 한 판씩 한다. 248km. 평균 방향 240˚로 수정. 좌우는 모래산 줄기 정면 80km 지점에 검은 산맥이 가로 막고 있다. 시속 180km. 태양이 오르고 사막이 데워지면 쌍안경 사용이 점점 어려워진다. 아지랑이
현상으로 전방 5km 이후부터는 산들이 남태평양 뉴 캘리도니아 군도의 수많은 모래섬처럼 파란 바다 위에
떠 있는 모습이 되기 때문이다. 352.30km. 1번 체크 포인트를 지난 후 모래산을 넘어가다 진퇴유곡. 뒤로 후진하면 맞은 편 둔덕으로 오르려던
차는 자꾸 후미가 틀려 내리며 사방이 막힌 구렁 아래로 밀렸다. 정면 오르막으로는 차가 오를 능력이
없어, 왼편 30˚경사 둔덕 쪽으로
길을 만들고 깔개를 깔았다. 그러나 그것도 실패였다. 창자가
거꾸로 되면 환장이라 했지. 그걸 몇 번 하고 나니 속에서 불이 날 것 같았다. 난리 지옥이었다. 15m 아래 저 구렁 속으로 차가 내려가 버리면
모든 게 끝장이었다. 움직여 보려고 하면 할수록 차는 밀려 내리기만 했다. 예서 우리의 장정이 끝나야 하나! 그 동안 여기까지 총 6,111km 주파했다. 200여 대의 차종이 이미 낙오한 것에 비하면
그래도 장했다. 차를 사장하는 일이 내 몸을 땅에 묻는 것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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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 체크 포인트를 지난 후 모래산 골짜기에 차가 그만 빠져 버려 모래산 중턱에서 오도가도 못하게 된 우리는 주위의 지형을 면밀히 읽고 의논한
후 비장한 승부를 걸었다. 예서 끝나면 대망의 88년 우리
차와 우리 팀의 참가는 수포로 돌아 가게 된다. 90분 동안 모래를 치우고 축대를 쌓고 길을 만들었다. 그리고 네 바퀴의 바람을 1kg이하로 압력을 줄여 지면 접착을 최대화했다. 차가 25˚경사 둔덕만 거슬러 준다면 마의 구렁 옆면으로 180˚타고 돌아 내리는
반동으로 뒤쪽의 낮은 등성이를 타기로 했다. 차의 진로를 지표에 표시해 두고 나는 경사 위쪽에서 차의 후미 오른쪽에 밧줄을 묶고 밧줄을 내 허리에 감았다. 시모나는 보조 운전석 쪽으로 살얼음 밟듯 들어가 운전석에 앉았다. 나는
해를 보고 감히 쳐다볼 수 없는 하느님을 불렀다. ‘병신같이…그렇게 자주 부탁하다니…미안하지도 않니?’ 나는 자책했다. 저속 4륜 구동 1단, 차는 제자리에서 납작해진 타이어를 움직이기가 힘이 드는지 전신을 떨다 맹렬히 모래를 뿜으며, 틀리듯 오르듯 미끄러지는 사투를 하더니 낙타처럼 천천히 속력을 내었다. 나는
휙 아래로 몸을 돌리고 25˚의 경사 옆면으로 내리며, 그 반동을 타고
능선을 향해 비벼 올랐다. ‘하느님 맙소사… 감사합니다.’ 내 꼴은 먼지와 땀으로 또 0원 인간이 된 채, 등성이
정상에서 구겨진 담배 한 대를 피워 물었다. 이 때는 시모나의 모래 운전 솜씨를 칭찬해 줘야 할 것
같다. 나의 효험 있는 기도를 과용하게 한 것도, 날 죽었다
깨어나게 한 것도 그이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차의 바퀴 바람을 뺀 것도 주효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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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4km 언덕을 힘겹게 올랐다가 급경사에 내리꽂히고, 그
반동으로 오르고 미끄러지며 큰 모래산 줄기를 넘었다. 골마다 차들이 처박혀 있었다. 일본 시티즌(Citizen) 팀도 거의 90˚에 가까운 비탈에서 반동으로 공중에 튀어 올라, 다음
접착지에 앞바퀴만 갖다 찧어 앞바퀴 두 개가 내려 앉아 있었다. “정열적인 키스를 했군. 입이 완전히 깨져 버렸어… 이빨까지.” 시모나의 빈정거림이 맘에 안 든다. “넌 무슨 심보가 그러니? 도둑놈이 너보다는 낫겠다.” 두 일본 경주자들은 먼지 반죽을 한 채 타는 듯한 햇볕 속에 쪼그리고 앉아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촌음이
아까운데도 나는 시모나에게 차를 세우게 하고, 그들에게 가 손을 잡고 다친 데를 묻고 위로했다. 다른 나라 파이럿들보다 일본 파일럿들이 낙오될 때 마음이 더 안됐다. 이제
그네 젊은이들은 나의 멋진 경쟁자이고 동정 가는 친구이다. 옛날, 나는 무조건 일본이라면 일본 사람이라면 미워했다. 유학
시절에는 마치 애국이나 하는 것처럼 그네들을 몇 번 실컷 두들겨 준 적도 있었다. 자성의 소리는 미미하게
들려 주었고, 피해 의식을 미주알 고주알 대물림 받은 우리 젋은이들의 구겨진 인간성이 세계로 나아갈
때, 당해 보지 않은 나라의 마음보 넓은 젊은이들과 어깨를 겨룰 방법을 우린 이야기해야 하리라. 우리 젊은이들끼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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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뉘엿뉘엿한 산줄기와 산줄기 사이의 마른 강바닥을 50km나 달려왔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고, 낄낄거리며 흉을 보았다. 서울과 부산보다 먼 거리를 마르고 험한 강바닥으로 만 밤새워 달려야 한다. 또
엊그제처럼 먼지 속 지옥의 대접전을 벌여야 한다. 낯익은 해가 한 뼘 정도 하늘에 남아 있을 때 향수같이
아쉽고, 오지로 들어가고 있는 낯설은 외로움을 억제할 수 없었다. 456km. 260˚로 방향 수정. 허물어
내리는 돌산 사이의 와디에는 제법 마른 나무도 자라고, 야생 낙타가 키를 재며 잎을 먹고 있었다. 척박한 와디 안의 나무들은 서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李箱의
나무에 관한 시가 생각난다. 저 마른 강바닥에서 끔찍히 생명을 포기하지 않는 나무들, 이편과 저편의 고만고만한 거리에 서 있는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저
몸짓과 침묵도 내가 모를 무슨 말을 저희들끼리 건네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우리들이 요란히 지나간
조금 후, 밤이 오면 그네들은 우리들이 씌운 먼지를 툭툭 털고 무슨 일을 은밀히 시작할 것 같다. 505km. 샘 하나로 산 아래 척박한 땅을 일구며 사는 토인 부락을 지났다. 부락을 한참 지나, 차에서 내려 볼 일을 보고 있는데 인기척이 있어 돌아봤더니 아무도 없다. 기분이
오싹했다. 조금 있다 또 소리가 나 뒤돌아 훑어봐도 아무도 없다. 기분이
오싹했다. 벌떡 일어나 고함을 질렀더니, 몇 명의 아이들이
저쪽 나무 위로 잽싸게 숨어 올라갔다. 나는 차에서 레이션을 꺼내와 나무 밑으로 다가갔으나 좀처럼 경계심을
품고 내려오지 않았다. 과자 몇 쪽을 던졌더니, 그걸 조심히
주워 보고 그들은 도망가지 않았다. 나는 조심스레 그들의 손을 잡고 어루만졌다. 나무를 깎아 바퀴까지 만든, 장난감 자동차를 밀고 다니며 수줍게
시위하는 놈도 있다. 가지고 온 헌옷들을 나누어 주며 아이들 얼굴을 자세히 보니, 어둠침침한 속에서도 참 섬세하고 잘 생겼다. 손과 맨발은 굉장히
두꺼운 각질이 생겨 있었다. 갑자기 가엾은 생각이 든다. 한편, 마음 속으로, ‘에이, 병신아! 니가 더 불쌍한 놈일지도 몰라. 저 애들이 아무 것도 모르는 것처럼… 게다가, 너는 아무 데나 오줌을 싸듯, 아무 데나 대고 너와 비교해 보려는
교만함까지 있는 놈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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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300km가 남았으나, 나 자신의 나약함과
무능함이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멈출 수도, 달릴 수도 없다. 이럴 때 고장이 나거나, 차가 빠지게 되면 큰일이었다. 굽이굽이 오지 속으로 뒤틀려 들어가는 와디 숲 너머에는, 토인 부족
마을이 군데군데 숨겨져 있었다. 그들은 아직 창을 들고, 옷을
옷답게 입지 않고 있다. 현대 문명과 차단된 채, 태고적
삶을 그대로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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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모래와 웅덩이의 상태는 갈수록 험하여 지고, 먼지 속 우리의 시력과 체력은 반비례하여 떨어지고
있다. 마른 입 속은 모래 먼지로 끈적인다. 차가 벌써 3번이나 크레파스에 곤두박질치며 빠졌다, 나왔다 했다. 차의 모든 불을 끄고 머리 전등만 비추며 모래를 퍼내고 깔았지만 마음은 이미 비워져 있어 겁도 없어졌다. 한편, 숲 너머 들짐승을 통째로 끼워 불을 지피는 그네들 초막 주위로 마음이 맴돌며, 불과 원시에로 향하는 향수를 억제할 수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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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2일 간의 장정 중 쉬는 날이다. 아니, 그 동안 조난당하고 사고난 것들을 중간 수습하는 날이다. 엊그제, 9일날 돌아오지 않은 차들 중 6대는 완전히 사막으로 사라져 버렸고, 수많은 사고자들은 응급 조치와 수술을 하여 유럽으로 후송되었다. 오늘 아침 현재, 37대의 차가 어제 코스에서 귀환하지 않은 상태이다. 그 동안의 각종 사고와 낙오로 우리들 대열에서 빠진 차가 120대를
넘고 있다. 정확한 집계는 아무도 모른다. 이런 난리 와중에도 나는 이곳, 아가데즈 읍 최고 큰 호텔에서 늦잠을 자고 샤워를 했다. 뒷간 같은 샤워장이었지만 뜨거운 물이 나왔다. 파리를 떠나 처음
맛보는 문화 회귀의 행복감에 젖었다. 어제의 885km 경주
코스를 오늘 새벽 4시 43분까지 주파해 낸 일은 내 생의
역사에 남을 일이었다. 지금 기분 같아서는 다시는 그 험난한 야간 코스를 해낼 수 없을 것 같다. 이제 곧 말리를 넘어가게 되면 그곳에서 다시 모리타니아다. 특히, 모리타니아의 사하라 횡단 3코스는 마의 코스로 칭하여지며, 이 대회의 절정을 이룬다. 갈수록 험난해지는 여정, 나는 어디만치에서 내 차와 내가 주저앉을 것인가, 생각해 보기를
의식적으로 거부하고 있다. 우리의 체력, 차의 메커니즘, 순간의 지형과 속도, 조난… 그
모든 것을 다 해결해 낸다해도 운이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다카르까지 가리라, 기필코 아프리카 서해안에서 내 몸을 적시리라, 일본 사람이나 구미 사람들이 문제가 아니다. 야심차고 공격적으로
끓는 내 피와 거만함을, 그 무엇도 꺾은 적이 없었는데, 이
욕망의 불덩어리가 메커니즘과 원시 속에 남은 이 만리 길에서 주저 앉아야 한다면, 그것은 문제다. 나는 오후 내내 잡념을 물리치고, 정성 들여 차의 모든 부분을 보조
트럭 요원들과 정비하고 무로 닦아 냈다. 해질 무렵 읍내 난장판 시장 구경을 나갔다. 시내의 집들은 대부분 토담집으로, 길 쪽으로 나들이 문 하나 뿐, 창이 없었다. 작은 아이들은 몰려다니며 선물을 달라고 하고, 큰 칼들을 가지고 다니며 반 강요로 물건을 사라고 할 때는 자못 경계심이 갔다. 더구나 시모나는 이 난장판 속의 으슥한 골목으로 한참 돌아가 액세서리 가게로 나를 안내했다. 서로
고함을 지르며, 부르는 게 값이고 깎는 게 값이었다. 이곳
처녀들이 시집갈 때 목에 찬다는 아가데즈 수호신 목걸이를 몇 개 고르고 있는 나를 시모나는 가로막았다. “이 얼빠진 병아리야, 내가 흥정할 테니 넌 호주머니나 조심하고 있으렴….” 그리고 그는 가지고 온 헌옷과 약을 주인이 고개를 흔들 때 마다 한점한점씩 더 꺼내 놓으며 물물교환을 했다. 우리가 가지고 간 헌옷은 그들에겐 평생 입을 한 재산이다. 신기한
흥정 싸움을 끝내고, 시모나는 자기 옛 친구 집으로 갔다. 거리
쪽으로 난 문을 통과하니 여러 채의 토담집이 있었고, 대가족이 살고 있었다. 시모나의 친구라는 사람은 칠순 노인으로 몸져 누워 있었다. 우리는
퀴퀴한 그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달빛이 휘황한 토담 벽 옆, 흙마당에는
아낙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앉아, 아주 단순한 가락의 노래를 선창, 후창해
가며 부르고 있었다. 우리 할머니들이 부르던 노래 가락 같다. 조금
전, 그렇게 깍쟁이던 시모나는 그의 친구를 얼싸안고, 가지고
온 옷과 약품을 몽땅 내어 놓고, 하나씩 하나씩 먹는 요령과 적응증을 큰 소리로 또박, 또박 일러 주었다. 그 집을 나오며 시모나는, “모하메드, 다음에 올 때까지 꼭 살아야 해. 응, 모하메드!” 하는 소리를 몇 번이나 그에게 했다. 나는 그가 기특하여, 그날 저녁 호텔에서 구운 양고기와 맥주로 저녁을 샀다. 낮부터 호텔에서 설치던 새까맣고 말쑥한 친구가 식사 테이블에 다가와 넙죽 절을 했다. 그것도 한국사람 식으로… 자기는 경찰이란다. 명함을 보니, 그것도 경찰 정보 요원이었다. 아하! 그래서 오늘 낮에도 호텔 종업원들이 이 친구 앞에서 모두들
기를 못 펴고 있었구나. “웬일이오?” 하고 물었더니, 자기는 태권도 파란 띠인데 니아메이(니제르
수도) 자기 사범님이 최 아무개라며, 오늘 낮부터 한국 태극기를
몸에 붙인 나를 유심히 보았단다. 오늘 종일 멀리서 나의 일거일동을 지켜본 이 친구에게 상당히 성가신
기분이 들었는데, 듣고 보니 신나는 일이다. 이 먼 데까지
우리 태권도가 와 있다니… 나는 또 맥주와 양고기를 한껏 시켰다. 그는
다음날 내가 떠날 때까지, 우리 일행과 대회 조직 임원들을 위해 그의 아래 사람들과 함께 모든 편리를
봐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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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주파 7,132km. 오늘 구간, 아가데즈- 타우아 518km. 아침 5시
기상. 더위와 모기에 잠을 설쳤다. 차, 일반 점검. 연료 280L, 계기
작동 오케이. 비박 장소를 벗어나 10분 후부터 평원이 펼쳐졌다. 우리가
지나는 이곳이 사하라 남부에서 적도까지 전개되는 대초원이었다. 몇 시간을 달려도 달려도 계속되는 초원에는
억센 풀과 중간중간에 가시나무가 늘어서 있고, 가끔 샘이 나타났다. 샘
가에는 목동과 당나귀가 그림 속같이 머물러 있고, 낙타 떼와 양 떼가 주위에 흩어져 있었다. 그것들의 얼굴은, 대부분 초식 동물이 그렇듯 가만히 있어도 하느님이
복 준 얼굴이다. 풀이 없는 붉은 황무지에는 큰 동물들이 죽어, 뼈만
형체대로 반쯤 묻혀 있었다. 사람의 손이 아직 가지 않은 니제르 평원은 죽은 듯이 살아 있었다. 오전 11시. 오늘 코스는 유럽 스피드 경주 선수들에게
유리한 코스였다. 우리들 일행 중 예닐곱 명 정도는 트랙을 도는 시합에 세계적 명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초원이 고른 땅 위로 절로 생긴 피스트의 상태가 좋아, 평균 시속 150km~200km는 족히 유지할 수 있는 코스이다. 하지만 이
초원 어디쯤에 자연 웅덩이가 숨어 있을지 모르는 일이고, 속도가 있는 차는 항상 속도 그 자체가 모든 위험을 다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계속 초원이다. 지표는 모래로 깔려 있다. 시속 100km에서 커브를 돌면, 7m~10m 정도로 커브 바깥으로 차가
밀렸다. 그런 피스트를 지그자그로 돌 떄의 밀리는 좌우 폭은 20m나
된다. 자동차 경주의 묘미는 뭐니뭐니해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정해진
각도의 방향을 타는 기술일 것이다. 속도와 각도와 도로 상태 계산에 경주자의 착오가 있으면, 차는 수십 바퀴를 돌면서 100m 이상이나 굴러 버린다. 198km. 피스트를 잃어, 샘 가에 있는 목동에게 방향을 물어보았으나, 천진난만한
웃음 뿐 전혀 말을 하지 않았다. 40km를 되돌아 나오다, 30˚나 방향을 우측으로
수정하여 초원을 가로질렀다. 잿빛 고라니 두 마리가 차 진행 방향으로 도망했다. 시속 130km 이상으로 거친 초원을 달리는 괴물은, 순식간에 그 놈들을 따라잡아 버렸다. 216km. 모래 피스트를 돌다, 차의 엉덩이가 또 나무에 부딪쳤다. 염병할
년! 어차피 못쓸 년이다. 308.30km. 종일 달리며 우리가 유일하게 하는 인간 행위는 오줌 누는 그 일뿐이다. 그리고, 그 시간만이 유일하게 허리를 펴 보는 기분 좋은 순간이다. 평원의 낮은 암석층으로 올라서 우린 차에서 내렸다. 놀랄 일이다. 발 아래 돌이 모두 조개와 굴 뿐이다. 눈을 의심하고 주워 보니
대부분이 돌 조각의 형체가 완전한 대함, 고동, 빗살 무늬
조개, 불가사리, 성게들이었다. 조개 하나를 집었더니, 실체 조개보다 훨씬 무겁다. 나는 암석층에 붙어서 그 조개들을 줍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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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미국도 소련도 그리고 우리나라 경주 불국사도 한번은 바다로 내려가 버리고 말겠구나! 사하라가 옛날에 바다 밑이었듯이….” 언젠가 내가 미케네 문명권의 크레타 섬 산 정상에서 조개 화석을 주웠을 때의 감회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 곳은 활화산 지대로 섬이 꺼지고 바다 밑이 튀어 오를 수 있었겠지만, 이 아프리카 대륙
중심부 사하라 남쪽이 바다였다니…. 나의 이런 감회는 멀리 후미에서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불타고 있는 차가 눈에 띄면서 사라져 버렸다. “달리자!” 6시 51분, 친 타바라덴 도착 지점 마을. 들판에는 수백 명의 토인들이 모여 우리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들의
차림새를 보니 마음이 안타까워옴을 어쩔 수 없다. 신발 신은 사람은 몇 없고, 옷을 온전히 입은 자는 군인 밖에 없었다. 쌍둥이 같은 아이를 서너
명씩 데리고 흙먼지 판에 앉아있는 여인들, 아이들은 아예 눈과 코에 부은 수십 마리의 파리 떼를 쫓는
걸 포기하고 같이 다니고 있었다. 이 모든 내 눈 앞의 것들을 아프리카 전통적 삶의 형태라고 봐주기에는
억지감이 간다. 이곳에는 가난이 없고 더러움도 없다.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문명 속에 사는 우리들의 사치스러운 단어일 뿐이다. 이곳은 우리가 사는 곳보다 깨끗하다. 넓은 초원과 사막이 그러하고 특히, 밤은 천 배나 맑고 아름답다. 오늘은 하늘 수박밭 사이에 자리를
폈다. 침낭 속에 드니 마침 보름달. 지친 심신이건만 잠을
이룰 수 없다. 여윈 얼굴의 골을 타고 넘쳐 내리는 달빛을 바람이 설레며 걷어 갈 때마다 다시 뜨이는
눈…. “달이 부시누나.” 이 편에 하늘 수박들이 달빛에 밀려 등 너머로 막 굴러가고 있는 듯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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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주파 거리 7,732km. 오늘 구간 타우아- 니아메이. 아침 6시 기상. 몸
상태가 좋지 않다. 몸이 무겁고 계속 눈이 감긴다. 어제
저녁, 이곳 토인들이 구운 양고기를 먹은 것이 탈이 난 것일까? 모기에
많이 물려 뇌염 증세 같기도 하고, 아니면 축적되어 온 과로로 기어이 몸에 병이 난 것일까 싶어 염려된다. 아무튼 죽고 아픈 건 두고 볼 일이다. 아침 9시, 46.80km에서 정북 방향으로 방향
수정을 한 뒤 얼마 안 되어, 계속 미끄러지며 초원의 나무들을 피해 가다 고목에 차 허리가 걸쳐질 뻔했다. 미끄러지며 틀리는 방향으로 전력을 다해 핸들을 틀었더니 차의 엉덩이가 살짝 부딪치며 한 겹 차이로 비껴 나왔다. “엉덩이가 다 깨져 버렸으니 여자 매력은 다 떨어졌지 뭐니.” 벌써 몇 번이나 부딪쳐 뒤가 일그러진 차와 나를 빗대어 시모나가 빈정거렸다. 67.50km. 검은 빛이 도는 황무지에 수많은 흰 개미집들이 나타났다. 그것들은 단단한 황토로 쌓아 올린 탑
같았는데 어떤 것은 사람 키를 훨씬 넘는다. 101km. 내리막길 속의 웅덩이를 내리고 오르며 차는 깨지는 소리를 내고 있다. 건너편 언덕 아래 맑은
호수가 나타났다. 찬연한 햇살을 받고 있는 물가에는 소 떼와 낙타 떼가 물을 마시고 있다. 그러나 이곳 마을 사람들은 건조한 흙먼지 속에서 살고 있다. 아이들은
씻지 않은 때로 피부에 각질이 생겨 있다. 이렇게 물 좋은 마을이 황폐해 있음이 마음의 갈증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저 흙먼지 속, 세시로 가려진 그네들 얼굴, 그리고 그들의 얽은 나무집, 깊숙한 어디쯤에는 내가 본 적 없는
안식과 번성함이 있을 지 모를 일이다. 내가 저네들과 조금 다르게 살았을 뿐이다. 마치, 토담집 부엌 너머 방 한칸에서 예닐곱 식구, 군불 때고 긴긴 겨울을 불펀함 모르고 살아온 소작농이나 나무꾼들처럼…. 164.25km. 인가두 촌락 지남. 깊은 모래와 와디 방향 270˚. 234km. 돌멩이길. 시속 80km. 마을 어귀에 노인 한 명이 쓰러져 있었다. 차에서 급히 내려 보니, 노인은 머리와 배가 아픈 시늉을 한다. 배에서 큰 혹 같은 것이 나와 있다. 노인의 표정으로 봐서 아주
심한 병에 걸린 것 같다. 나는 의자 밑에서 우황청심환 몇 알을 꺼내 노인의 입에 한 알 넣어 주고, 나머지는 호주머니에 담아 주었다. 우리들 위를 날아가던 S.O.S 의료 헬리콥터가 우리 차의 사고로 오인하고 저만치서 내리더니 바람 속을 날아오듯이 약 상자를 들고
의료진이 뛰어왔다. “엇! 저 멍청이들 봐. 이 노인이야말로 진짜 너희들
손님이군.” 그들은 앙상한 노인의 엉덩이에 강심제 종류의 주사를 놓아 주더니 한 웅큼의 약을 또 건넨다. 우린
그들을 두고 급히 달아 났다. “저 노인, 약물 과다 복이 터졌는데, 오히려 해가
될지 모르겠구나.” 시모나는 염려를 했다. “염려 마, 내가 준 약은 죽어 가는 사람도 한 알만 먹으면 살아난단다. 그리고 백 알을 먹어도 죽는 일은 없어.” 316.5km. 우리 앞을 날아간 헬리콥터에 피투성이의 경주자가 고무 튜브에 싸여 실리고 있다. 차는 바위 언덕에
떨어져 있었다. 아뿔사…. 341km. 방향 330˚~340˚ 계속 초원의 돌길과
퍼석퍼석한 모래. 또, 순간순간 긴장으로 지루하여 온다. 이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지루함을 느끼는 것은 별난 괴로움이다. 511km. 시속 180km로 달리던 차의 후미 오른쪽 타이어가 맹렬한 소리를 내면서 찢어져 나갔다. 차는 몇 번이나 뒤집히려고 하다 간신히 멈추었다. 중심을 가늠하여
넘어지지 않고 이백여 미터를 굴러 온 차를 보고, 나는 웃음이 터져 나왔으나 웃을 수도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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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쇼, 친구들!” 대부분 이럴 때는 먼저 말을 거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나는 앉은 채로 눈을 치뜨고, 꽤 큰 고함을 쳤다. 조그마한 놈의 호령 인사를 가소롭게 봤는지, 그들은 들은 척도 않고 사라지더니 더 이상 내 앞에 오지 않았다. “허기야, 기름 때와 먼지로 사람 같지 않게 생긴 나를 보고 무슨 말을 걸 가치를 느꼈으랴.” 그 사람들을 별로 미워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 나이살 먹은 점잖은 얼굴에 국민 학생처럼 가슴에
사람의 얼굴이 그려진 빼지를 달고 다니는 것이, 우습기보다 차라리 내가 민망해진다. 아무튼 외제 수입은 다 사람들을 정신 나가게 하지만, 그 중에도
외제 사상 수입을 잘못하는 것만치 사람을 얼빼는 것이 없으리라. 나는 10시가 넘은 늦은 밤이었지만, 우리 대사관으로
가서 대사께 실례를 무릅쓰고 관저 목욕탕으로 들어가 뜨거운 물을 덮어 썼다. 관저로 들어서는 나를 보고
대사께서 먼저, “우선 좀 씻는 게 좋겠소.” 하고 말했을 만큼 내 꼴이 그런 모양새였나 보다. 밭에서 직접 가꾼 배추와 무로 담근 김치와
찌개는, 그 동안 낙타처럼 굶어 온 나를, 체면이고 뭐고
잊어 버리게 했다. 마침 대사께서는 이 자동차 경주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과 관심을 가지고 계셨고, 누군가 한 사람쯤은 이 경주에 참가했어야 했다고 하며 많은 위로와 성원을, 김치와
밥에 정신이 빠져 있는 내게 해주었다. ‘자랑스런 조국, 인정스런 우리 사람들, 우리 만이
통할 수 있는 마음 속 우리 말….’ 나는 긴 사하라 종단을 끝내고 잠시 집으로 돌아왔고, 김치와 밥으로 엄청난 힘을 보충하고 있었다. 88년도에는 태극기를 들고 수백 km나 마중까지 나오겠단다. 밤이 늦은 시각에 관저를 나선 나를 데리고 대사는 우리의 교포 어른의 집으로 갔다. 파리-다카르 자동차 경주에 한국인이 참가하여 이곳에 도착했다는 연락이
벌써 됐나보다. 이곳 TV에 내가 잠시 비쳤단다. 곧 즉석 환영회가 벌어졌다. 잠을 자두어야 하지만 이런 기쁜 모임, 밤을 새면 어떠랴. TV에서는 늦게 도착하고 있는 우리들 대열을 계속 중계해 주고 있었다. 마침 의사인 김 박사가 나를
진찰하고 약을 지어 주었다. 대사 댁에서 깍두기 김치도 얻었는데…오늘은
복 터진 날이다. 못난 놈 처가집 갔다오는 기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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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코스, 니아메이-가오 645km. 총 주파
8,377km. 간밤 호텔에 돌아오니 그 때까지 차가 정비되어 있지 않았다. 정비소를 믿었던 거 t이 잘못이었다. 새벽까지 한숨을 못 자고 정비를 했다. 아침8시, 접선 구간 출발. 이 곳 니아메이는 수도라고 하기에는 절박한 가난이 보였다. 시내
한복판에도 나무 천막집들이 즐비했다. 그래도 큰 길가에는 내무, 외무, 법무성 등의 우람한 간판을 단 건물들이 보였다. 접선 구간은 계속 니제르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니제르의 팔’이라
불리는 니제르 강과 아침 햇빛에 묻힌 마른 들판의 경치는 일품이었다. 고갈된 사막 속을 청청히 흐르고
있는 강은 도도하기까지 하다. 이집트의 나일 강이 그렇듯, 니제르
강의 푸름은 서슬이 시퍼런 뱀같이 한방울의 물도 사막을 적셔주지 않고 꿈틀거리며 흐르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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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20km. 세카 마을 통과. 57km. 미끄러운 자갈 피스트를 타고 있다. 시속 100km 정도에서 4륜 구동 3단으로 기아를 줄이면,
120˚~130˚의 커브 길은 미끄러지지 않고 돌 수 있다. 포뮬(Formule)이나 랠리(Rallye) 경기에서 뒷바퀴가 미끄럼을
타지 않고 커브를 도는 것도 중요한 기술이다. 특히, 우리가
하는 랠리는 도는 노면 상태가 조건이 항상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복합 기술과 판단이 필요하다. 이 방법은 주로 산간 지방이나 아웃 피스트를 할 수 없는 좁은 진행로를 주행할 때 사용하는데, 노련한
레이서들일수록 차가 넘어지기 직전, 미끄러지기 직전의 최대 원심력까지 속도를 줄이지 않는다. 99.78km. 흰 개미집들이 붉은 모래땅에 연이어져 있다. 차 안은 한증막 같고 입안에 모래가 버적거리지만, 물 한 모금 마실 시간이 없다. 181.80km. 전방 5km, 오아시스 나타남. 동남아나 니스 해변의 그런 늘씬한 종려수가
아니라, 소나무 같이 가지가 제멋대로 퍼진 종려수들이 야생하고 죽어가고 있다. 240km. 돌산 공격. 삭막한 주위 전경이 몸의 수분까지 증발시키는 것 같다. 318km. 방향 270˚검은 모래땅. 차 속에는 뜨거운 열기로 덥혀진
먼지가 떠다닌다. 노란 먼지는 눈 앞에서 내 깊은 폐부로 제멋대로 들락거리고 있다. 421km. 돌무덤 위를 뛰어넘다 웅덩이에 박힌 차를 한 시간 동안이나 걸려 꺼내 놓고 보니, 완충 장치와
하부 쿠션이 부러져 있다. 시모나와 나는 서로 어깨를 치며 낙담한 눈길로 서로 쳐다보고 서 있었다. 시모나의 눈은 충혈돼 있고 초점이 흐려져 있었다. 불쌍하다. 우린 대강 수리를 하여 남은 80km를 무리하더라도 강행하기로 하고, 별 효용은 없겠지만 앞쪽의 기계와 차 하부로 연결되는 모든 부분을 줄로 묶어 조였다. 로드 북에 나와 있는 모래산 줄기 2개만 넘어가면 된다. 나는 현기증과 실신 기운으로 눈도 제대로 뜰 수 없게 되었다. 501km. 도착 지점을 통과. 공항 옆 비박 장소에 도착하자 나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영롱한 꿈과 잠이 범벅되는 순간들 이었다. 안전 벨트도 풀지 않고
죽은 듯이 눈을 감고 있는 내게 시모나는 어디서 구했는지 큰 맥주 한 병을 내밀었다. “야 임마, 마셔야 해!” 나는 단숨에 반 병을 비웠다. 먼지 천지 너머 멀리 붉은 노을 기운이 몸 속에 섬세하게 배여
왔다. 마비된 몸의 부분부분에서 불 같은 열기가 일어나 가슴으로 모이고, 그것들은 역한 감정으로 변했다. 비참한 이 장소를 멀리 유럽에서
자체 위성 중계 장비를 갖춘 비행기가 날아와 지쳐 쓰러져 있는 우리들의 몰골을 중계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갓 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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